그날도 평범한 오후였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스피커폰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모자라 상대방과 큰 소리로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정말로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좀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더 강하게 뭔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이어폰을 꺼내 끼우고는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막은 걸까?
눈 뒤에 숨어 있는 작은 현자
답은 우리 뇌 속 깊숙한 곳, 정확히는 눈 바로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영역에 있다. 그 이름은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 참 어려운 이름이지만, 하는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가 감정에 휩쓸려 무언가를 저지르기 전에 "잠깐, 이거 정말 해도 되는 일인가?"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마치 어깨 위에 앉은 작은 천사처럼 말이다. 다만 이 천사는 종교적 교훈이 아니라 사회적 상식과 장기적 결과를 기준으로 우리에게 조언한다.
이 부위가 건강할 때, 우리는 분노와 이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다. 즉석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보다는 나중에 올 더 큰 만족을 선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규칙을 의식하며 행동한다.
피니어스 게이지의 슬픈 변신
1848년, 미국 버몬트의 한 철도 공사장에서 일하던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남자에게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폭발 사고로 인해 철심이 그의 두개골을 관통했는데, 운 좋게도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피니어스가 아니었다.
사고 전의 그는 성실하고 신뢰받는 작업반장이었다. 동료들과 상사들 모두 그를 좋아했고, 그의 판단력을 믿었다. 하지만 사고 후의 피니어스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욕설을 일삼고, 약속을 어기고,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그가 잃은 것은 바로 안와전두피질이었다.
피니어스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가 '인간답다'고 느끼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이 작은 뇌 영역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일상 속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 보자. 안와전두피질이 우리 삶에서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놀랍다.
야식을 시키려고 배달앱을 켜놓고 망설이다가 결국 끄는 순간, 지하철에서 누군가 새치기를 해도 참는 순간, 전 연인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멈추는 순간. 이 모든 작은 승리들 뒤에는 안와전두피질의 조용한 개입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극도로 피곤하거나, 술에 취했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한다.
현대인의 뇌가 위험하다
요즘 우리의 안와전두피질은 참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즉각적인 자극을 제공하고, SNS는 우리를 비교의 늪에 빠뜨린다. 야근과 스트레스는 일상이 되었고, 충분한 잠을 자는 것은 사치가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의 감정 조절 능력은 점점 약해진다. 마치 계속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근육이 결국 지치듯, 안와전두피질도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자극에 지쳐간다.
그래서 최근 들어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것은 아닐까? 개인의 성격 문제라기보다는, 현대 사회가 우리 뇌에 가하는 부담의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 뇌 속 중재자를 돌보는 법
다행히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다.
잘못된 습관으로 약해진 안와전두피질도 올바른 방법으로 다시 강화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명상이다. 하루 10분만이라도 조용히 앉아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는 마치 헬스장에서 근육을 단련하듯 우리의 주의력과 자제력을 키워준다.
감정을 글로 적어보는 것도 좋다. "지금 나는 왜 화가 났을까?",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를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안와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한 수면이 중요하다. 잠을 잘 때 우리 뇌는 하루 동안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을 정리하고, 손상된 부분을 회복시킨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책 한 권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떨까?
마치며: 작은 멈춤의 힘
결국 우리가 키워야 할 것은 '멈춤'의 능력이다.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과 행동하는 순간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을 만드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안와전두피질이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 "이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 이런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노예가 아닌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한 번 생각해보자. 오늘 하루 동안 나의 안와전두피질은 얼마나 바쁘게 일했을까? 그리고 내일은 그 작은 중재자에게 좀 더 여유로운 하루를 선물해줄 수 있을까?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는 작지만 현명한 중재자가 살고 있다.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바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