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0년 동안 고기를 금지한 나라가 있다.
그것도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조선이 태어나고 망하는 동안 줄곧 이어진 금기였다.
바로 일본의 이야기다.
우리는 일본을 회와 초밥, 두부와 나토 같은 담백한 음식 문화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시대가 만든 강요된 식습관이었다.
육식을 하면 죄인이 되었고, 고기를 씹는 것조차 사회적 낙인이 되던 시절.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몰래 먹었고, 고기를 물고기라고 속여가며 먹었으며, 그 안에서 지혜와 욕망은 묘하게 살아 움직였다.
이 글은 그 금기의 시작과 끝을 좇는다.
일본은 언제부터 왜 고기를 금지했고, 그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리고 그 금기가 풀린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까지, 1200년의 역사를 따라가 보려 한다.
시작은 7세기, 금지는 체면을 위한 자비였다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육식을 금지한 첫 해는 서기 675년.
한국으로 치면 신라 문무왕 시절이었다.
당시 일본의 왕은 소, 개, 말, 사슴, 원숭이 다섯 동물의 도살과 섭취를 금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불교의 자비였지만, 실상은 체면과 외교였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서 ‘문명국’처럼 보이기 위해 불교 국가라는 이미지를 적극 차용했고, 그중 가장 손쉬운 상징이 바로 ‘고기를 먹지 않는 나라’였다.
왕실이 직접 불살생을 선언하고 백성들에게 실천을 강요함으로써, 일본은 문명 이미지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종교가 아닌 정치였다. 그리고 그 정치가 사람들의 식탁을 바꿨다.

신라 중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약 1200년간 이어진 금기
이 금기는 단발적 조치가 아니었다.
서기 675년부터 1872년경까지, 무려 12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신라 중기부터 고려 전 기간, 조선 전체를 거쳐 대한제국 초기까지
일본은 공식적으로 국민에게 육식을 금지해왔다.
물론 지방에 따라, 시대에 따라 세부 금지 항목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왕실과 귀족 사회를 중심으로 한 금육 문화는 단단했다.
고기를 먹는 건 단순한 위반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부정한 존재’가 되는 일이었다.

도살은 죄악, 고기는 죄의 증거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결함의 상징이었다.
육식은 육욕과 연결됐고, 동물을 해친 죄악으로 간주됐다.
무엇보다도 고기를 파는 사람들, 즉 도살업자들은 철저히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그들은 ‘에타’라 불리는 불가촉 천민 계층으로 낙인찍혔다.
일반인들과 결혼도 할 수 없었고, 손에 닿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고기를 다룬다는 이유 하나로 사람은 사람 이하의 존재가 되었다.
먹는 행위는 곧 정체성을 바꾸는 일이었고, 그 죄의식은 입 안까지 스며들었다.

욕망은 금기를 뚫는다
그러나 사람의 입맛은 그렇게 쉽게 봉인되지 않는다.
고기의 맛을 안 이상, 그것을 금지하는 법이 아무리 강력해도 사람들은 새로운 길을 찾는다.
대표적인 편법이 바로 ‘언어적 위장’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토끼다.
토끼는 분명히 네 발로 뛰는 동물인데, 일본에서는 두 개의 귀를 ‘지느러미’로 간주해
‘두 지느러미 달린 물고기’로 분류했다.
그렇게 해서 토끼는 어류처럼 취급되었고,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토끼는 ‘산의 가다랑어’라는 우스운 별명을 얻었고,
문서상으로는 생선을 먹은 것이고, 실제로는 고기를 먹은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멧돼지나 오리도 교묘하게 분류를 바꿔 합법적으로 유통되었다.
불법은 아니었다.
그저 모두가 눈을 감은 채 허용한 회색의 일상일 뿐이었다.

몰래 먹는 밤의 역사
금지한다고 해서 고기가 사라지진 않았다.
에도 시대 후기, 지방 기록에는 산속에서 멧돼지를 사냥해 몰래 구워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고기 냄새가 멀리 퍼지지 않도록 들기름과 된장으로 향을 눌렀다는 조리법까지 적혀 있다.
상류층 중에는 보신용 한약으로 위장한 사슴고기를 몰래 처방받기도 했다.
표면상으론 ‘강장용 탕약’이었지만, 실상은 고기였다.
밤이 되면 야산에는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다.
에도 막부 말기의 일기에는
몰래 고기를 먹고 나서 “몸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난다”며
“이건 악행이 아니라 생존”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는 기록도 남아 있다.
죄와 생존 사이에서 사람들은 줄타기를 했고, 때로는 죄책감 위에 구운 고기를 올렸다.

고기가 허용된 이후, 모두가 자유로워졌을까?
육식을 장려한 지 150년이 지났다.
지금의 일본은 고기 없는 나라가 아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모두 널리 소비되고, 와규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가 되었으며,
편의점 도시락에도 고기 반찬은 당연히 포함된다.
하지만 그 전환은 순식간에 이뤄진 게 아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오랫동안 남아 있던 금기의 그림자가 있었다.
고기를 먹는 행위에 어쩐지 남아 있는 낯설음,
먹고 나서 몸이 따뜻해지는 대신, 마음 한쪽이 조용히 불편해지는 느낌.
그래서 일본에서는 육식이 완전히 일상화된 뒤에도
채소 기반의 정진요리, 가짜 고기, 발효 단백질 등
‘고기 없이 고기스러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 놀라운 집착을 보여왔다.
그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12세기 넘게 이어진 죄책감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마치며: 우리가 마주한 질문
서기 675년, 누군가가 "고기를 먹지 마라"고 말했다.
그리고 1200년 넘게, 사람들은 그 말을 지켰고,
또 어겼고, 또 몰래 먹었다.
그 시간 동안 고기는 음식이 아닌, 하나의 거울이 되었다.
신분을 나누고, 사람을 나누고, 마음을 흔드는 기준이 되었다.
입에 넣는 순간은 짧지만,
그 앞에 머뭇거리는 마음은 길었다.
지금 우리는 자유롭게 고기를 먹는다.
그 누구도 그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고,
누구도 몰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또 다른 고기를 두고 조용히 갈라지고 있다.
개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이를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고,
도축부터 판매까지 일체를 금지하자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반려견이라는 존재가 이제는 가족의 일부로 인식되고,
K-문화와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런 나라가 아직도 개고기를 먹느냐”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어떤 동물은 먹고, 어떤 동물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기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온 세대와,
윤리와 이미지라는 언어로 살아가는 세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간극이 놓여 있다.
고기라는 것은 결국 입에 넣는 음식이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 정체성, 그리고 시대 감수성을 드러내는 표정이다.
일본이 수세기에 걸친 금기를 마주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식문화를 길어 올렸듯,
우리 역시 지금,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을지에 대한 질문을
조금 더 깊고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무엇을 먹는가보다 중요한 건,
왜 먹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더 이상 혼자만의 식탁 위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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