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중반쯤이었다. 스무 살이 막 되었고, 주머니 사정은 늘 넉넉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시내에 나가면 꼭 카페에는 들어갔다. 영화를 보고, 거리를 조금 걷다가, 괜히 오래 앉아 있고 싶어서였다.
그때 카페 메뉴판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던 단어가 있었다. 파르페. 유리컵에 담긴 아이스크림과 과일, 시리얼 같은 것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메뉴 중에서는 살짝 비싼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망설여질 정도는 아니었다. 연인과 함께라면 자연스럽게 한 번쯤은 시켜보게 되는, 그런 메뉴였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파르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어디에서 온 단어인지,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예쁘고 달콤한 디저트였고, "카페에 왔다는 느낌"을 완성해 주는 상징 같은 존재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우리는 그 이름을 이해하지 않아도 아무 불편 없이 파르페를 먹고 있었다.
이 글은 그때 먹었던 디저트의 맛을 다시 떠올리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절 아무 의문 없이 지나쳤던 '파르페'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 그리고 왜 유독 그 시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지에 대해 차분히 들여다보려는 기록이다.
완벽하다는 뜻의 디저트를 만든 사람들
파르페는 프랑스어다. '완벽한', '흠잡을 데 없는'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달걀노른자와 설탕, 크림을 섞어 얼린 차가운 디저트에 왜 '완벽하다'는 이름을 붙였을까. 19세기 프랑스 파티시에들은 대체 무엇을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들이 추구한 건 화려한 장식도, 층층이 쌓인 비주얼도 아니었다. 질감이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그 느낌, 재료들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균형. 그것이 그들이 생각한 '완벽함'이었다.
그래서 원조 파르페는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길다란 유리컵도, 과일 장식도, 긴 스푼도 없었다. 그저 작은 그릇에 담긴, 조용하고 절제된 디저트였다. 완성도 그 자체를 이름으로 가진 음식.
그런데 이 조용한 디저트가 태평양을 건너면서,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일본이 파르페를 만났을 때
1980년대 일본의 다방에서는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파르페'라는 개념을 받아든 일본의 카페들은, 원래의 레시피를 고집하는 대신 과감하게 해체하기 시작했다. 투명한 유리컵을 꺼내 들었고, 층을 만들었으며, 색을 입혔다. 아래에는 콘플레이크, 중간에는 아이스크림, 위에는 휘핑크림과 과일, 그리고 마지막엔 빨간 체리 하나.
프랑스인들이 보면 기겁할 조합이었지만,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여전히 '파르페'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질감의 완성도가 아니라, 시각적 완성도였다. 유리컵 너머로 보이는 층들, 그 자체가 새로운 완벽함이었다.
그리고 이 일본식 파르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 왜일까. 단순했다. 먹기 전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남기기 좋았고, 누군가와 나눠 먹기 좋았으며, 무엇보다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소품으로 완벽했다.
파르페는 이제 더 이상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일본이 재해석한, 일본식 완성도를 가진 디저트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에서 '데이트 메뉴'가 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카페에 일본식 파르페가 상륙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이 디저트는 한국에서 또 한 번 변신한다.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르페는 '혼자 먹으면 어색한 메뉴'가 되었다. 너무 크고, 너무 화려하고, 너무 오래 걸렸다. 혼자 앉아서 긴 스푼으로 유리컵을 긁어내는 모습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파르페는 자연스럽게 둘이서 먹는 음식이 되었다. 연인들의 메뉴. 데이트의 마무리. 영화를 보고 나서, 또는 시내를 걷다가 자연스럽게 들어간 카페에서 "우리 파르페 하나 시킬까?" 하고 물어보는 그 순간의 음식.
그래서 우리는 파르페의 맛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누구와 먹었는지, 그날 뭘 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파르페는 맛보다 장면으로 저장된 디저트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질감의 완성도였고, 일본에서는 시각적 완성도였다면, 한국에서 파르페는 관계의 완성도가 되었다.

왜 파르페는 사라졌을까
2000년대를 지나며 카페 문화는 빠르게 바뀌었다. 에스프레소 중심의 커피, 테이크아웃, 빠른 회전율. 사람들은 더 이상 카페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파르페는 이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준비 시간이 오래 걸렸고, 자리를 오래 차지했으며, 무엇보다 '혼자 먹기 어색한 메뉴'는 1인 중심 문화와 맞지 않았다. 효율의 시대에서 파르페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파르페가 조용히 돌아오고 있다. 이번에는 유행이 아니라 복고의 형태로. 사람들은 파르페를 먹으며 과거를 소비한다. 천천히 녹는 아이스크림, 유리컵 너머로 보이는 층, 그리고 그걸 먹던 예전의 자신.
파르페는 이제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시간을 되돌리는 장치가 되었다.

마치며
나는 파르페라는 단어가 '완벽함'을 뜻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완벽함이 프랑스와 일본과 한국을 거치며 전혀 다른 의미로 변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9세기 프랑스 파티시에에게 완벽함은 질감이었다.
1980년대 일본 카페에게 완벽함은 비주얼이었다.
2000년대 한국 연인들에게 완벽함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파르페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가 생각하는 '완벽함'의 정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재료도, 모양도, 먹는 방식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같은 이름을 가진 채로 살아남은 음식.
그리고 어쩌면, 그 되짚어보는 과정 자체가 지금 우리 시대의 새로운 '완벽함'인지도 모른다.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장 섯다 족보 한눈에 정리 (0) | 2026.01.01 |
|---|---|
| 샘 알트먼이 말하는 사업하는 법: 잘되는 스타트업은 왜 늘 엉망일까 (1) | 2025.12.29 |
| 대창은 왜 먹을까? 기름 덩어리 부속 고기가 비싸진 이유와 건강상 이점의 실체 (1) | 2025.12.23 |
| 우리들이 육식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 왜 인간은 육식동물로부터 단백질을 얻지 않을까 (1) | 2025.12.19 |
| John 3:16만 새겨 내 무덤 앞에: 그날 쇼미더머니 비와이 랩에서 멈칫했던 이유 (1) | 2025.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