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는 적당히 소란스러웠다.
커피잔 옆에 놓인 친구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자동차 검색 페이지가 떠 있었다.
“나 휘발유 차 보고 있는데 왜 가솔린만 나오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장난치는 거 아니지? 휘발유가 가솔린이야. 디젤은 경유고.”
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아, 그렇냐…” 하고 화면을 다시 넘겼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사소한 승리를 거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정도는 상식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왜 굳이 그 말투를 썼을까.
휘발유는 gasoline,
영국에서는 petrol이라고도 부른다.
경유는 diesel이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등유는 영어로 뭐였지?
항공유는?
정유 과정에서 어떤 분별 증류를 거쳐 각각의 연료가 나오는지 나는 설명할 수 있을까?
옥탄가와 세탄가의 차이를 정확히 말할 수 있을까?
등유는 kerosene이고, 항공유는 jet fuel이라는 걸 검색하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나는 친구보다 조금 더 알고 있었을 뿐,
어디까지가 진짜 이해인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 애매한 사람이라는 걸 그제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지식은 위계가 아니라 스펙트럼이다.
어떤 영역에서는 내가 앞에 있고,
다른 영역에서는 내가 한참 뒤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만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기준을 ‘상식’이라고 부른다.
상식이라는 말은 중립적으로 들리지만, 그 안에는 조용한 선언이 숨어 있다.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그 말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 긋기다.
나는 이 선 안에 있고,
너는 지금 선 밖에 있다.

그날 카페에서 나는 틀린 말을 하진 않았다.
휘발유는 가솔린이 맞고,
경유는 디젤이 맞다.
문제는 정확성이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정보를 말한 것이 아니라 위치를 정하고 있었다.
나를 위에, 친구를 아래에.
그래서 마음이 걸렸다.
왜냐하면 영역이 조금만 바뀌면 나는 언제든 그 반대편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 공정의 분별 증류 곡선을 설명하라 하면 나는 멈출 것이고,
엔진 점화 특성을 묻는 자리에서는 더듬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보며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상식이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의 내 표정은 친구의 표정이 된다.
상식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잠시 서 있는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그림자에 가깝다.
지식의 선이 아니라 태도의 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같은 말이야. 헷갈릴 수 있어.”
정보는 그대로 두고, 위치만 낮추는 방식으로.
우리가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의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하다.
그리고 그 경계는 언제든 움직인다.
어쩌면 나는 늘 그 선 위를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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