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온 뒤 운동장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며 누군가 속삭였습니다.
"야, 지렁이한테 오줌 싸면 고추 썩는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움찔했고, 지렁이를 보는 시선이 180도 달라졌죠. 어린 마음에 그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하나의 철칙이었고, 동시에 은밀한 호기심이기도 했어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성인이 된 우리는 그때의 그 말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어린 시절의 그 두려움은 정말 과학적 근거가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단순한 도시전설에 불과했던 걸까요? 이제 그 미스터리를 한번 제대로 파헤쳐볼 시간입니다.
어린 시절 금기의 탄생
초등학교 운동장, 야외 수련회,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그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아이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수많은 금기 중에서도 유독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이 바로 이 '지렁이 오줌 금지령'이었어요. 그런데 왜 하필 지렁이였을까요? 아마도 그 미끈거리고 꿈틀거리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으악, 뭔가 위험한 녀석이야!"라는 본능적인 경계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거예요.
재미있는 건 이 속설이 단순히 아이들의 상상력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른들도 은연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고, 때로는 진지하게 경고하기도 했거든요. 그렇다면 여기에는 분명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죠?
오줌줄기라는 신비한 통로의 정체
이 속설의 핵심은 바로 '오줌줄기를 통한 역류'라는 꽤 창의적인 개념이에요. 마치 오줌줄기가 하나의 파이프처럼 작동해서, 지렁이의 무언가가 그 통로를 타고 쭉쭉 거슬러 올라온다는 상상 말이죠. 생각해보면 꽤 무서운 시나리오이긴 합니다. 하지만 물리학적으로 이를 분석해보면... 음, 좀 애매한 상황이 벌어져요.
오줌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튼튼한 고체 파이프가 아닙니다. 그냥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는 액체의 연속적인 흐름일 뿐이에요. 마치 폭포수가 연결된 하나의 물줄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수히 많은 물방울들이 "야, 우리 같이 내려가자!"하고 뭉쳐서 내려가는 것과 같거든요. 따라서 그 안에서 무언가가 "어? 나는 위로 올라갈래!"하며 거슬러 올라간다는 건...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화학적 확산의 실제 원리
그렇다면 화학적 관점에서는 어떨까요? "잠깐, 오줌줄기가 지렁이와 연결되어 있는 순간에는 뭔가 통로가 생기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해요. 마치 전해질이나 이온 같은 미세한 화학물질들이 중력 따위는 무시하고 오줌줄기를 타고 스르르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실제로 전해질은 용액 내에서 확산을 통해 이동합니다. 그리고 오줌을 누는 동안에는 분명히 지렁이와 우리 몸 사이에 액체의 연결고리가 형성되죠. "어? 그럼 정말로 뭔가 전달될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확산의 방향과 속도입니다. 전해질의 확산은 농도 차이에 의해 일어나는데, 초당 수십 센티미터 속도로 흐르는 오줌줄기 안에서 상류 방향으로의 확산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요.
더욱이 오줌 자체가 이미 나트륨, 칼륨, 요소 등 다양한 전해질을 높은 농도로 포함하고 있는 용액입니다. 화학에서 확산은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원칙이거든요. 지렁이의 체액보다 오히려 오줌이 전해질 농도가 더 높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설사 확산이 일어난다면 오히려 오줌의 전해질이 지렁이 쪽으로 이동해야 할 상황이에요. 마치 진한 설탕물과 맹물을 섞으면 설탕이 맹물 쪽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과학적 진실
지렁이는 위협을 느끼면 끈적한 점액을 분비하는데, 이 안에는 박테리아 등 미생물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점액이 오줌줄기를 타고 생식기로 침투하려면, 흐름이 거의 멈춰 있어야 하고, 점액과 오줌이 혼합되어 상류로 이동해야 하며, 생식기 주변에 상처까지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조건이 동시에 충족될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깝습니다. 결론적으로, 지렁이에게 오줌을 누는 것이 생식기에 직접적인 해를 끼친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로의 여행을 마치며
지렁이에게 오줌을 싸면 생식기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줌줄기를 통한 성분 역류나 감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희박하며,
이는 생물학적 구조와 물리적 흐름의 원리를 통해 충분히 설명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말 한마디에도 “정말일까?”라고 묻는 태도입니다.
그 질문 하나가 오해를 지우고, 더 정확한 세계를 보여주니까요.
호기심은 때로 잘못된 믿음을 거쳐, 결국 과학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