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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똑같이 줘야 해!” vs “아니, 성과대로!” 초등학생들의 극단적 대립

by 냉정한망치 2025.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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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관련 저울 일러스트


지금 아이들은 ‘등수’라는 단어를 거의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시험만 치르면, 다음날 혹은 며칠 뒤 과목별 점수와 등수가 공개되던 시대.
중간·기말 성적표는 항상 전교 석차, 반 석차, 과목 석차를 선명하게 담고 있었고
그 한 장의 종이가 교실 분위기를 뒤집어놓곤 했다.
누가 올랐는지, 누가 떨어졌는지, 그 좌표가 곧 정체성이었다.

나는 1980년대 중반 세대다.
그 시절의 공기는 경쟁의 냄새로 가득했고, 등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데 가장 강력한 언어였다.

하지만 최근,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진행된 작은 실험이
이 ‘언어’를 완전히 달리 쓰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선행학습이 만든 새로운 ‘보이지 않는 등수표’

얼마 전 방송된 다큐에서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진행됐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를 일부러 시험에 넣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지금 교실 속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학습 격차의 단면을 아이들 스스로 체감하게 해보기 위해서.

그리고 여기서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상당수 아이들이 문제를 거침없이 풀기 시작한 것이다.

“방학 때 중학교 과정까지 나갔어요.”
“친한 친구는 고1까지 끝냈대요.”

반면 어떤 아이들은 문제를 펼쳐 본 순간 손을 떼었다.

“이거 배운 적 없어서 찍을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어요.”

이 실험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세대가 겪었던 ‘등수표’는 사라졌지만,
지금 아이들은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줄 세우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더 깊고 은밀한 격차.
등급은 없어졌지만, 출발선 자체가 달라지는 경쟁이 교실 안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피라미드 형태로 쌓은 나무 블록 이미지

성적순 상금 분배, 아이들의 마음은 갈라졌다

실험은 여기서 한 번 더 확장되었다.
교사는 반 전체에 주어진 상금을 성적순으로 차등 지급했다.

예상을 뒤흔드는 반응들이 나왔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불공평해요.”
“저 친구들은 너무 많이 받아요.”
“차이가 너무 크면 상처가 돼요.”
“집안 사정 때문에 못 따라오는 친구는 어떡해요?”

하지만 또 다른 반응도 있었다.

“잘한 만큼 받아야죠.”
“성과니까요.”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어요.”

그 작은 교실 안에서조차
성과·공정·보상에 대한 기준은 이미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은 우리 세대와도 닮았고, 동시에 완전히 달랐다.

공정함 관련 3 갈래길 일러스트

1980년대 중반 세대의 눈으로 본 ‘성과주의의 무게’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오래전의 교실로 잠시 돌아갔다.

시험이 끝나면 성적표가 돌아오고,
그 성적표 속 숫자는 나를 단숨에 어느 위치에 ‘배치’했다.
반에서 몇 등이었는지, 전교에서 어느 정도였는지,
그 좌표가 나의 자신감을 만들기도 하고, 한 번에 무너뜨리기도 했다.

과정보다 결과, 관계보다 성과가 더 우선되던 시대.
그 구조는 나를 밀어준 적도 있지만,
또한 너무 빠른 속도로 사람을 소진시켰다.

그래서 다큐 속 청년이 했던 말이 크게 남았다.

“성과주의는 사람을 너무 빨리 망가뜨린다.”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성과만을 기준으로 세계를 재단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결국 숫자 하나로 축소된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냈다.

줄 세우기 관련 편지봉토 비유 일러스트

아이들이 새롭게 정의하는 ‘공평함’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생각이 달랐다.

상금을 다시 ‘공평하게’ 나눠보라고 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택한 방식은 모두가 똑같이 받는 것이었다.

“큰 차이는 자존심이 상해요.”
“어려운 친구에게 좀 더 줘야 해요.”
“같이 살아가야 하니까요.”

아이들의 말은 단순한 평등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들은 성과뿐 아니라 감정, 관계, 배경, 기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세대가 공정함을
‘같은 시험, 같은 규칙, 다른 결과’로 배웠다면,
아이들은 공정함을
‘상처받지 않는 것, 함께 살아가는 것, 기회를 나누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감각은 작지 않다.
세대가 바뀌면 공정이라는 단어의 형태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정함 관련 참조 일러스트


마치며: 우리는 어떤 기준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가

결국 이 실험이 던지는 질문은,

기회의 차이를 무시한 채 ‘성과’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정당한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기준을 다음 세대에 건네고 싶은가?

등수표는 사라졌지만 경쟁은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그 경쟁을
상처 없이, 포기 없이, 인간성을 잃지 않게 만드는 방식은 무엇일까.

1980년대의 나와
2020년대의 아이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공정’을 말하고 있다면,
이 간극을 연결하는 일은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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