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6일, 에세이집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백세희 작가가 향년 35세로 세상을 떠났다.
뇌사 판정 후 그녀는 심장, 폐, 간, 양쪽 신장을 기증해 다섯 명을 살렸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쓴 사람. 방탄소년단 RM이 SNS에서 읽은 책으로 소개했던 그 작가. 그녀가 남긴 책 1·2편은 국내에서 60만 부가 팔렸고, 25개국에 번역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게 있다. 그녀가 싸웠던 우울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거다.
주요우울장애와 기분부전장애는 완전히 다른 병이다
우울증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우울증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하고 드라마틱한 건 주요우울장애다. 갑자기 무너지는 절망감, 며칠 동안 침대에서 안 나오는 그런 거. 이건 눈에 띄니까 주변에서도 알아채고, 본인도 뭔가 심각하다는 걸 느낀다.
백세희 작가가 겪은 기분부전장애는 정반대다. 가벼운 우울감이 계속 이어지는 거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일어나서 씻고, 출근하고, 밥 먹고, 누군가와 대화한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정상인 사람처럼 보인다. 근데 그 안에는 계속 회색빛이 깔려 있다. 좋은 일이 생겨도 기쁘지 않고, 아무 일도 안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이게 1년, 2년, 3년... 계속된다. 10년 넘게.
그 기간 동안 뇌는 뭘 할까? 그 우울한 상태를 '정상'으로 인식해버린다.

뇌가 우울을 배워버렸다는 거
우울증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다. 기분을 조절하는 전전두엽,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이 세 개 영역의 신경 회로가 망가진 거다.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서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기 시작한다.
여기서 정말 무서운 부분이 나온다.
이 상태가 오래될수록 뇌는 그걸 '자신의 기본값'으로 학습해버린다. 마치 잘못된 자세로 오래 앉아있으면 몸이 그 자세를 편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뇌도 우울한 리듬에 완전히 적응해버리는 거다. 그래서 약을 먹어도, 치료를 받아도 왜인지 회복이 더디다. 뇌가 이미 우울함을 기억했거든.

행동과 감정이 동시에 튈 수 없는 상태
기분부전장애를 앓으면 이런 일이 반복된다.
좋은 일이 생겼는데 기분이 안 좋아진다. 아무 일도 안 했는데 맥이 풀린다. 이게 왜일까? 편도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그 감정을 조절해야 할 전전두엽은 힘이 없는 거다. 거기에 해마가 부정적인 기억들을 자꾸만 꺼내온다. 사소한 일인데도 예전의 슬픔이 함께 떠오르는 거다.
더 악질인 건 행동 패턴이다. 우울할 때 아무것도 안 하는 습관이 쌓이면, 뇌는 그걸 반복 학습한다. 그래서 더 안 하게 되고, 더 우울해진다. 악순환이 생긴다.
이 상태가 오래되면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이 따라오지 않거나, 마음이 움직이려고 하면 몸이 멈춘다. 행동과 감정이 따로 노는 거다.

그래도 회복은 가능하다
기분부전장애는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뇌는 신경가소성이라는 능력이 있거든. 즉,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패턴을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항우울제는 회복의 토대를 만들어준다. 운동과 충분한 수면은 신경세포를 다시 만든다. 심리치료는 부정적인 생각 패턴을 바꾼다.
근데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자기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것. 우울증은 약함이 아니다. 약한 사람이 우울한 게 아니라, 뇌가 너무 큰 고통 속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백세희 작가가 자신의 병을 이렇게 솔직하게 드러낸 이유가 여기다. 책을 통해, 강연과 토크콘서트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 문장이 의미하는 게 뭘까. 그건 죽음과 생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면서도, 여전히 작은 욕망으로 버티는 사람의 진짜 마음이다. 그걸 감추지 않는 순간이 바로 회복의 시작인 거다.
마치며: 남겨진 말들
2025년 10월 16일, 한 명의 작가를 잃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60만 부의 책, 25개국에 번역된 그 말들은 계속 누군가의 어둠 속에서 빛처럼 작동하고 있다.
우울증과 싸우고 있는 너에게 말한다. 당신의 뇌는 고장난 게 아니다. 지금 회복을 배우는 중이다. 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배울 수 있고, 마음은 언제든 다시 켜질 수 있다.
백세희 작가가 자신을 솔직히 마주봤던 것처럼, 너도 그렇게 하면 된다.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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