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사람이라면 다 아는 말인 줄 알았다.
어릴 적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말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단어, 굳이 뜻을 정의하지 않아도 모두 알아듣는 단어.
나는 그중 하나가 ‘꼬딸’이라고 믿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그 말은 부산 전역에서 통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믿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작은 충격이 이 글의 시작이 되었다.
부산의 아이들은 모두 썼다고 믿었던 단어
나는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부산의 한 동네에서 보냈다.
그때 우리 동네에서 ‘꼬딸’은 마치 공기 같은 단어였다.
장난감이 작동을 멈추면
“야, 이거 꼬딸이다.”
게임기 버튼이 씹히면
“이거 완전 꼬딸인데.”
문방구에서 산 싸구려 미니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와 이거 꼬딸이고”
어떤 복잡한 의미도 없다.
고장났다, 불량이다, 저품질, 고물이다.
그냥 그 느낌이 너무 정확해서, 굳이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나는 그 단어가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형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말문이 막혔다
얼마 전,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형과 이런저런 옛날 얘기를 하다가 무심코 말했다.
“어릴 때 장난감 고장나면 다 ‘꼬딸이다’ 이랬잖아?”
그런데 형의 표정이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게 뭔데?”
잠시 멈췄다.
혹시 말을 잘못 들었을까?
그래서 다시 말했다.
“아니, 고장 났을 때 쓰던 말 있잖아. 꼬딸.”
형은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순간 묘한 이질감이 밀려왔다.
이 형 역시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인데도 모르는 말이라니.
이건 확실히 이상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단어
‘꼬딸 뜻’
‘꼬딸 부산’
‘꼬딸 사투리’
‘꼬딸 유래’
결과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음.
블로그에도 없고, 커뮤니티에도 없고, AI 답변에도 없다.
웹에서 이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단어는 부산 사투리가 아니라 내가 자란 그 골목, 그 세대, 그 또래들만 쓰던 초미세 지역어였다는 사실을.


우리만 알고 있었던, 사라질 뻔한 말의 조각
생각해보면, 언어는 동네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문방구 앞,
동네 놀이터,
학교 운동장 모래밭,
오락실의 낡은 기계 앞에서,
누가 먼저 그 말을 꺼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퍼지다가,
세대가 바뀌면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진다.
‘꼬딸’도 정확히 그런 말이었다.
고장 난 물건을 보며 아이들이 동시에 내뱉던 단어.
말맛도 좋고, 감정도 명확하고, 상황을 한 번에 설명해주는 단어.
하지만 아주 좁은 범위에서만 생겨났기에
인터넷 시대에 들어와 다시 호출되지 못한 단어.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남겨두고 싶었다.
누군가 언젠가 그 단어를 검색하려 할지도 모르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잊고 있던 기억의 열쇠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말을 기록한다
‘꼬딸’.
부산 전체가 아니라, 내가 살던 그 동네만 알고 있었던 말.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분명히 쓰였고,
분명히 내 어린 시절의 언어였다.
사라질 뻔한 그 작은 단어를
누군가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이곳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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