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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과 토트넘 레전드: '지미 그리브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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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그리브스 포스팅 썸네일
Jimmy Greaves Story


손흥민 인스타그램 @hm_son7

손흥민이 토트넘의 상징적 인물이 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클럽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손흥민 이야기가 아닙니다. 손흥민 이전에 토트넘을 빛낸 또 다른 레전드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미 그리브스입니다. 해리 케인이 토트넘 역사상 최다 득점자가 되기 전, 이 자리에는 지미 그리브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그의 업적과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미 그리브스라는 축구 천재를 깊이 탐구해 보겠습니다.

 

Jimmy Greaves
Jimmy Greaves @wikimedia commons

지미 그리브스: 골을 위한 본능

지미 그리브스는 1961년 토트넘에 합류하면서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로 자리 잡았습니다. 데뷔전에서 바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그의 골 본능을 증명했죠. 당시 팀 동료들은 "지미와 함께라면 골은 항상 따라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브스는 토트넘에서 266골을 기록하며 당시 클럽 역대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습니다.

그의 골 스타일은 단순히 많은 골을 넣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공을 정확히 다루며,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한 팬은 그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지미가 공을 잡는 순간, 모두가 골을 예상했다. 그는 마법 같았다."

 

지미 그리브스
Jimmy Greaves @wikimedia commons

지미 그리브스가 토트넘 레전드인 이유

지미 그리브스가 토트넘 팬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뛰어난 득점 능력과 클럽에 대한 공헌 때문입니다. 그는 토트넘에서 379경기에 출전해 266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현재 기준으로 클럽 역대 최다 득점 2위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1963년 유럽 컵위너스컵 결승에서 그리브스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5-1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이는 토트넘이 유럽 대회에서 우승한 첫 번째 경기였습니다.그리브스의 전성기 동안, 그는 리그에서 여러 차례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1962-63 시즌에는 37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이는 여전히 토트넘의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그리브스는 토트넘에서 FA컵을 두 차례(1962년, 1967년) 우승했으며, 1962년 결승전에서는 경기 시작 3분 만에 선제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이러한 뛰어난 활약으로 그리브스는 토트넘의 전설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으며, 2002년에는 영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1959년 영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진
England national football team, 28 October 1959 @wikimedia commons

지미 그리브스와 해리 케인의 기록 비교

2023년 해리 케인이 그리브스의 266골 기록을 넘어섰을 때, 많은 팬들은 두 선수의 업적을 비교했습니다. 케인은 이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지미 그리브스는 제 어린 시절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기록을 넘을 수 있었다는 것은 저에게 큰 영광입니다."

그리브스는 단순히 숫자로 평가받을 선수가 아닙니다. 그의 골들은 팀에 승리를 안겼고, 팬들에게 희망을 줬으며, 축구라는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보여줬습니다. 케인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며, 그리브스가 토트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존경한다고 밝혔습니다.

 

해리 케인
Harry Kane in a game against Colchester United in the FA Cup @wikimedia commons

사람들이 몰랐던 지미 그리브스의 에피소드

사람들이 몰랐던 지미 그리브스의 에피소드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의 토트넘 이적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1961년 12월, 토트넘의 빌 니콜슨 감독은 그리브스를 영입하기 위해 매우 독특한 이적료를 제시했습니다. 그 금액은 바로 99,999파운드였습니다.이 특이한 이적료에는 흥미로운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10만 파운드를 넘는 이적료는 영국 축구계에서 전례가 없었고, 그리브스에게 '최초의 10만 파운드 선수'라는 부담스러운 타이틀이 붙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니콜슨 감독이 이런 금액을 제안했다고 합니다.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재미있는 일화를 넘어, 당시 축구계의 분위기와 선수들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니콜슨 감독의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그리브스가 토트넘에서 편안하게 적응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비 찰튼과 지미 그리브스
바비 찰튼(Bobby Charlton, 왼쪽), 지미 그리브스(Jimmy Greaves, 오른쪽) @wikimedia commons

그리브스가 남긴 유산

지미 그리브스는 단순히 기록으로만 기억되는 선수가 아닙니다. 그는 토트넘의 정신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업적과 헌신은 오늘날에도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해리 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리브스는 오랫동안 토트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혔습니다.

그의 유산은 단순히 축구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는 팬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고,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토트넘 팬들이 그리브스를 추억하며 그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미 그리브스 2007년 사진
Jimmy Greaves in 2007 @wikimedia commons


마무리하며: 전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지미 그리브스 선수는 현재 살아계시지 않습니다. 그는 2021년 9월 19일, 81세의 나이로 영국 에섹스 주 댄버리의 자택에서 별세하셨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의 본질과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브스는 이렇게 말했죠. "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팬들에게 행복을 주는 순간이다."

이제, 지미 그리브스라는 이름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으로만 남지 않길 바랍니다. 그는 진정한 레전드이며, 그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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